추억과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감성의 기록, 사진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지 어느덧 5년, 첫 사진기로 1만장의 사진을 넘기고, 그 동안 나 스스로 쓸만한 사진을 몇 장은건졌다고 가끔 뿌듯해 하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좋은 석양이 질 것만 같아서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담은 석양 사진, 근처를 몇번이고 돌아보다가 우연히 가던 길에 보이던 평화로운 커플과 파도의 모습을 담은 사진, 배위에서 찍은 지인의 뒷모습, 그리고 어느 자그마한 성에서 풍경을 찍는 사람들을 담았던 그 사진들과 그 추억들. 사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오래전의 기억들은 나에게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아마 이 때의 좋은 사진이란 기록으로서 감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손에서 사진기를 놓기 시작했다. 삶 속에서 얻는 감동을 내가 사진속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으면서였던 것 같았다. 또한 스마트폰이 기록으로서의 사진에 필요한 요소들을 충족해 주면서부터, 여행에 사진기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아마추어적으로서 좋은 작품성 있는 사진을 추구하는 것이 계륵으로 여기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추구해야 할 여행의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사춘기 소년마냥, 아무런 대책없는 여행, 자세한 조사를 한 여행, 기록으로 남기는 여행,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들이 중구난방으로 함께 하면서 또 한 여행내에서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어떤 일관성이 없는 시간이 지속되다가, 점차로 나만의 여행 철학이 담기기 시작 했던것 같다. 스스로가 정하는 ‘여행 테마’라는 이름으로.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숫자는 드라마틱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그나마 찍는 사진들 역시 기록을 목표로 하거나 순간적인 직관과 같이 감각에 의존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사진에 대한 아마추어리즘적인 접근 방법은, 이제 여행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글에 대한 아마추어리즘적인 접근 방법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찍어왔던 일만장이 넘는 사진들을 통해서, 약간이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노력을 알고 있던 필자는 그 노력을 다른 부분에 쏟고자 하였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그 순간을 담아낼 수 있는 글들. 지식과 지혜, 나의 삶의 철학을 함께 녹여내어 어떠한 형태로 표현하고 싶어하던 순수한 젊음.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사진을 위해 특별히 외출하지도 않지만 어린날의 추억으로 인해서인지 스스로에게 사진이 가지는 의미를 물어볼 때가 있다. 무엇이, 지금 눈 앞에 있는 광경을 담고 싶은 것인지. 어떻게 담아도 지금 내가 얻고 있는 그 환희를 담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왜 담고 싶은 것인지. 왼쪽의 사진은 미켈란젤로의 자취를 따라 도착한 피렌체에의 한 아카데미 갤러리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성작품들을 모아둔 홀에서 찍었다. 그 홀의 한쪽 끝에 있는 광장에는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 있는데 유명하고 잘 완성된 다비드 상이 아니라 잘 모르는 이런 미완성작을 사진에 담았던 것은, 누군가가 태어나는 그 순간을 이 미완성작을 통해서 느끼고 있는 생명력의 탄생과도 같은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나의 이 사진으로는 어떻게 편집을 하던 그 생동감, 감동을 어떻게 담아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였다.
개인적으로, 사진 자체게 가장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은 홀로 떨어진 세상에서 스스로의 자유와 책임을 느끼며 매일매일을 살아가던 순간이었던 같다. 사진의 매력에 눈을 뜬 지 얼마 되지도 않고, 늘 광량부터 구도까지 여러가지를 고민하던 그 시절, 한 장의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근처를 서성이며 좋은 구도를 찾고 해가 지는 찰나를 노려서 찍은 수백여장의 사진중에서 건진 단 하나의 사진.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사진 중의 한장이 호주 멜버른에서 담을 수 있었던 아래의 사진이다. 해당 사진은, 미디엄의 글을 처음 쓰면서 헤더로 올린 사진이기도 한데, 필자에게는 담고 싶었던 감성을 표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진이다.
위 두 사진에서 담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전달력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사진을 분석해 본다면 사진을 담은이와 보는이 사이에 발생하는 경험적인 교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미완성 조각품을 담은 사진에서, 나의 사진적인 기교는 조각이 탄생하는 생동감을 담아내기에는 크게 무리였다고 생각하고, 또한 사진만으로 내가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족가가로서의 스타일과, 미완성작들의 의미, 그리고 미완성작들이 몰려있는 홀의 구조 그 감성등을 사진에 함축적으로 담아 보는이에게 전달하지를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몇시간이나 공을 들여서 좋은 구도를 찾는다면 간접적이나마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생동감을 담아낸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 지난한 일이다. 반면, 석양의 그림은 공통의 경험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므로, 석양에서 이루어지는 마법과도 같은 색상의 변화를 즐기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나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추어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얼마전, 어떤 이태리 부부가 콜로세움의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한 적이 있다. 한두번 해당 장소에서 찍어보고, 무언가 마음에 안들던 나는 약간 팔을 올려서 콜로세움의 내부와 그 부부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각도에서 사진을 시도하고 찍힌 사진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돌려주었었다. 자리를 떠나려는 그 순간, 그 부부가 한’네가 찍은 이 멋진 광경, 우리의 모습을 보라. 우리에게 대단한 사진을 준 것이다’라는 말이 내 마음을 울려주었다. 비록 나에게 순간의 직관이 작용했던 결과일지 몰라도, 그 부부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잘 찍히는 일을 매우 드문 일인데에다가 스스로 담고 싶은 감성도 사진에 녹여내지 못하는 입장인데. 여전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에게 사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1. 이 글을 쓰면서 몇 가지 새로운 글타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큰 범주로 보아, 새로운 글타래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나의 아마추어리즘은 아마도 photography, journalism, 그리고 tourism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진행될것 같다. 과학도로서 바라보는 이들의 예술적 행위와 철학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창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2. 해당 글은 medium.com/@goraion에 먼저 게제한 다음 블로거로 재차 이사오며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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