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의 첫 크리스마스

  이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자는 종교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인구의 약 90%가 로마 카톨릭 신자인 이탈리아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명절에 버금가는 중요한 연례행사이다. 일반적으로 이브인 24일을 기점으로 1월 6일까지 약 2주일간 휴무에 들어간다.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나폴리 시가지 전체에서는 예수의 탄생에 대한 흙인형-이를 presepe라 부른다-과 나무로 만든 집들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말할것도 없고, 이를 꾸미는 각종 소품까지, 가히 도시 전체의 상점이 크리스마스 특구를 누리는 듯 하다.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준비에 돌입하는 시점을 굳이 정하자면, 12월 8일 성모와 관련된 축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집집마다 문앞에 나무로 된 장식품을 두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인삿말도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auguri라던가 buon natale등을 인삿말로 자주 하기 시작하는데 auguri는 메일의 말미에도 쓰고 이곳저곳에 쓰는 관용어인것 같고, buon natale는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라는 의미가 강한 것 같다. 굳이 따진다면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하는 한국정서와 비슷하지 않을까.

톨레도(Toledo) 관광지구의 모습

  나폴리 시 전체가 루미나리에(Luminarie)로 뒤덮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 다가온다. 전구의 모습들은 천사들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부터, 각종 선물상자와 같은 모습들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각 광장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이 즈음이면 길을 걷다가 창문 너머로 크리스마스 트리에 들어온 전구를 보기가 쉬워진다. 필자가 살고있는 아파트에도 중앙 현관을 들어서면 (이후 정원이 있고 여기에서 작은 건물입구가 분리되어있다) 관리인이 설치해둔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할 수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곳에도, 경비원을 통과하고 연구실이 있는 입구즈음에 presepe로 3명의 동방박사가 찾아가는 모습을 꾸며두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시가지 곳곳에 생겨날 즈음, 상점들마다 크리스마스 특선 음식들을 준비한다. 특히 선물에 자주 쓰이는 달달한 디저트 -dolce라 하는데 해당 단어는 단것이라는 의미도 가진다-를 포함한 여러가지 음식들, pandoro와 panettone와 같이 비교적 근대에 와서 유행하기 시작한 (각기) 베로나와 밀란의 케잌종류와 함께 초콜렛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도 여타 유럽과 같이 크리스마스 마켓이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큰 광장과 길 곳곳에는 간이 천막으로 만들어진 마켓이 들어선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자주 가는 톨레도인근, 단테광장, 보메로 지구 등에서는 이런 마켓들과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각종 presepe들과 나무로 된 장식품들, 혹은 집을 꾸밀수 있는 재료들을 판매하느라 정신없다. 물론, 일반 상품들도 취급하고 신년 달력 및 다이어리등을 취급하기도 한다.

톨레도(Toledo)인근 크리스마스 마켓의 모습.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이런 마켓들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서 각종 선물 및 생필품들을 판매한다.

  이탈리아에서 (의외로) 직업적으로 구걸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경우 적당한 카페나 식당 앞에서 오가는 손님들의 푼돈을 받아쥐려 노력한다. 유로화를 기본으로 쓰다보니 동전이 2유로 (우리돈으로 약 2700원)까지 존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 조금씩만 적선해도 어느정도 먹고살수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재미있는것은, 지하철등에 타서 자신의 사유를 말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늘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하면서 보이고, 또한 이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냥 동전하나만 휙 던지고 간다기 보다, 정말로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신경쓰는 그런 느낌. 이분들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각기 머리에 산타 모자는 하나정도 두르고 성업하고 계시고, 이 시즌에 특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탈리아 주민들로 인해 한 해의 마무리를 두둑하게 하는 기분이다. 이런 분들 말고도, 가게마다 작은 성금함을 만들어 단골들의 동전들을 채워 이곳저곳 성금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잃어버린 따스함이 다시 다가오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각박해진 현실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적어도 여기 나폴리에선 그리고 특히 지금과 같은 크리스마스에서는 여전히 따스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나의 주변을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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