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에 모인 사람들. 우측 상단에 보이는 발코니가 주요 코스이다. |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극이다. 우리가 아는 비극으로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는 영국의 셰익스피어로서 햄릿과 더불어 가장 많이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작품. 알려진 바로는, 이 비극의 원전은 아서 브룩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라는 이탈리아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서사시(narrative poetry)이다. 이탈리아 설화가 나오는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설화는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었던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를 배경으로 한다. 물론, 실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인기요소를 베로나 시에서는 잘 이용해 줄리엣의 집[1]을 만들었고 베로나의 유명한 야외 음악당인 아레나[2]에서는 인기리에 이를 공연한다. 이 줄리엣의 집에는 각종 중세시대의 소품과 함께 영화같은데서 봄직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2층 발코니(이탈리아 식으로는 1층)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찍는 명소인데, 이 이야기가 서구권에서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친구들 혹은 가족끼리 줄리엣의 집 뜰에서 발코니를 바라보며 친구가 나올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물론 어느경우가 되든 이 비극은 약 4일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줄리엣의 나이는 13살에 불과하다는것을 신경쓰면 집중이 안되므로 무시하도록 하자.
아레나(Arena di Verona)의 전경. 공연이 없는 낮 시간대에는 투어가 가능하다. 무대를 기점으로 뒤쪽 관중석은 공연용으로 이용. |
구글 맵을 이용해서 만든 베로나(Verona)의 중심 관광 지구. 아레나를 중심으로 관광지구가 형성되어 있고, 지도 중앙에 Museo di Castelvecchio와 그 뒤쪽의 다리는 과거의 베로나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서쪽에 일전에 소개한 산 제노 대성당(San Zeno Maggiore Basilica)가 존재한다. |
종탑(Torrei dei Lamberti) 앞 광장. 여러 레스토랑과 시장의 모습으로 위장한 기념품 가게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
이제 시선을 조금 돌려서, 베로나를 감싸듯 굽이져 흐르고 있는 아디지(Adige)강을 따라 오래된 성이라는 의미의 castelvecchio를 볼까. 아레나의 북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는 곳으로서, 지도에서도 손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이 오래된 성과 뒤쪽의 다리(Ponte di Castelvecchio)는 필자의 마음에 베로나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켜준 중요한 장소였다. 다리 아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이 나를 이끌고, 멀리 보이는 석양이 나를 멈추게 한다. 오래된 다리와 성채의 조화는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만 같고, 굽어진 아디지강을 배경으로 지는 해의 모습이 나의 이탈리아 여행의 절정을 알려주었다. 스탕달이 피렌체에서 이야기한 스탕달 증후군과 같이[6], 베로나의 폰테 디 카스텔베키오에서 보는 이 베로나의 석양은 나에게 경의와 환희로 다가왔다. 내가 과거의 이탈리아로 온 것만 같은, 영화속의 한 장면의 구석에 서서 세상을 방관하고 있는 또 다른 존재로서, 혹은 극중의 한 엑스트라로 등장해 호흡을 같이하면서, 마음속 깊이 이 오래되고 고전적이며 아담한 도시에 대한 사랑이 찾아오게 되었다. 이런 광경을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볼 수 있다는것,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베로나(Verona)의 Ponte di Castelvecchio에서 바라본 석양. 피렌체에서 스탕달이 과도한 아름다움에 취한 증후군을 노래하듯, 베로나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
여행을 다니다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여행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기회의 최적화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필자와 같은 게으른 여행은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꽉꽉 채워가며 이곳저곳 발품을 팔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과연 여행의 필수 요소일까. 스스로가 보고 싶었던 단면이라도, 느긋하게 늘어지면서 가슴에 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필자가 둘러본 베로나는 로마나 피렌체와는 다르게 명작이 넘쳐나는 빡빡한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옛 멋과 여유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던 것 같다. 비교적 느슨한 일정으로 로마-피렌체-밀라노를 거쳐 도착한 이 베로나는, 그 여행의 시기나 추억으로 따진다면 이탈리아 여행의 절정[7]이었고, 오랫동안 잊기 힘든 추억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마음만 먹으면 재차 방문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 다시 방문할지 모르니. 늦기 전에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아이다(Aida)공연 티켓이라도 구입해야 할 것 같다. 필자의 사진의 기술과 글의 필력이 부족하여, 느낀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것은 아쉬우나 이런 단계 단계가 필자가 앞으로 겪고자 하는 여행의 질적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베로나 기행문을 마무리한다.
[7] 이 다음 여행지가 바로 베네치아였으나, 이 도시는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측면으로 실망하고 만 도시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관광 특구에 맞춘 물가 및 맛없는 음식등, 비정상 회담 1회에 알베르토가 이야기한 ‘베네치아에 넘쳐나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야기가 정말 와닿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잦은 실패에 짜증난 필자가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서는 밥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을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