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식사 문화

전채요리(antipasti)로 나온 물소젖으로 만들어진 모짜렐라 (Mozzarella di Bufala). 나폴리 생활중 식도락의 시작을 알리던 황홀한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의미보다도 사회활동을 위한 중요한 행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자리를 바꿔가면서 음식과 술을 맛보게 되는 한국의 사회활동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메뉴는 크게 식전 음료 및 간단한 술을 마시는 행위(apertivo)와 실제 식사에서 다양한 메뉴로 이루어진 코스요리를 먹는 행위로 귀결된다. 식사에서 나오는 코스요리의 전형은 전채요리(antipasti)를 필두로 면류 요리가 주를 이루는 첫 번째 요리(primo), 육류 및 해산물등의 요리종류가 나오는 두 번째 요리(secondi), 디저트(dolce)로 구성된다. 한국의 반찬 등과 같은 곁반찬(contorni)의 경우에는 주로 secondi와 함께 먹게 되지만 경우에 따라 primo와 어울리기도 한다. 

 
  이러한 4코스 요리를 기본으로 조금은 간단하게 전채요리를 생략하기도 하고, 혹은 primo와 secondi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메인 디쉬로 생각해서 주문해서 먹기도 하는 등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리에서의 위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폴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메인 한접시와 전채요리를 먹으면 성인 남성도 충분한 양이 제공되기 때문에 격을 따지지 않는 자리에서는 누군가는 primo와 secondi만을 주문하고, 누군가는 토마토를 곁들인 모짜렐라 치즈와 같은 전채요리를 주문하면서 이를 secondi로 달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가 들어왔던 분위기와는 다르게도 secondi를 쉐어해서 먹는 경우도 꽤 있다. 물론 오랜 친분이 있는 경우나 그렇긴 한데, 격의없는 자리인 경우에는 우리가 들어왔던 서양 식사의 특징등을 크게 지키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격식을 갖추는 자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왼쪽 오른쪽 위 나이프 포크 스푼등이 셋팅되어 있고, 음식 역시 위의 4단계를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여기에서 primo를 작은 접시로 두 종류를 내기도 하고 secondi역시 그러기도 하는 등 기본은 4단계 코스이지만 몇단계가 더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몇 번 참석한 격식을 갖춘 연회에서는 primo를 두단계로 나누는 방법을 취했었던 것 같다. 와인을 서빙하는 경우에는 잔이 구분되어있고 작은 잔으로 적포도주를 마셨던 것 같다. 엄밀하게 음식에 맞춰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개인의 기호에 맞추어 마시는 편인데 백포도주나 적포도주중 한쪽만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었던 것 같다.
 
  격식에 관계없이 후식(dolce)의 경우 저녁식사의 경우 격식과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챙겨먹었던 것 같다. 물론 일상생활의 점심식사까지 챙겨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 후식은 과일이나 이탈리아식 케잌종류인데 여기 나폴리에서는 아주 달달한 시칠리아식 후식이 사랑받고 있다[1]. 만약 집에 초대받아서 식사대접을 받을 경우 사람들과 나눠 먹을 후식을 챙겨가는 것이 예의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서빙할정도로 챙겨갈 필요는 없고, 적당한 사이즈의 케잌하나 챙겨가면 다른 손님들도 하나씩은 챙겨오다보니 넘쳐나는 후식 부페를 구경할 수 있다. 이 경우 남는 후식은 손님들이 갈때 주인이 종류별로 나누어서 손에 쥐어주는 훈훈한 정서도 볼 수 있다. 후식을 먹으면서 혹은 먹은후에 일종의 끝내기에 해당되는 리큐어를 마시는데 나폴리에서는 소렌토를 원산으로 한 레몬첼로(limoncello,약 30도에 달하는 레몬 리큐어)나 시칠리아에서 유래된 아마로(amaro, 쓰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에서는 약초로 쓰면서 달게 만든 술이다[2])등이 일반적이다. 물론 시칠리아를 원산으로 한 매우 단 와인도 후식이후 단골손님이다. 사람에 따라 술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외식이라면 주로 에스프레소를 집에 초대받은 경우에는 주로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를 마시게 된다.
 
  전반적인 이탈리아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상당히 느린 편인데, 메뉴판을 보면서 웨이터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 가면서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주문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개의치 않는 분위기인데다가, 메뉴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도 이것저것 있어서 현지 사람들은 오늘 특별한 메뉴가 있는지 물어보면서 꽤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주문한 뒤에 실제 음식이 서빙되어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음식이 늦어진다고 하더라도 웨이터에게 언제 음식이 오는지 재촉하는것이 여기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인 것 같다. 한 번은 전채요리도 너무 서빙이 늦어져서 이탈리아인 친구가 언제 요리가 나오는지 물어보았다가 ‘주문했으면 가만히 앉아있어라’는 식의 면박만 받는 것을 지켜본적이 있다. 친구말로는 이정도로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드문 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재촉하는것을 싫어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친구도 물어보는 것을 보니 답답하긴 했었구나 싶지만.
 
  식당 입장해서 웨이터가 테이블에 오는데 10분, 메뉴 결정하고 오더하는데 20분, 전체요리가 서빙되어 나오고 먹는데 약 30분 정도 생각하면 메인 디쉬는 한시간정도 지나야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각 코스가 끝난다음에 빈 접시를 치우고나서야 다음 요리의 조리에 들어가기에, 새로 요리가 서빙되어 나올때까지 짧아야 10분 길면 30분정도의 시간이 소모된다. 이러한 시간들까지 포함하여 4코스 요리를 먹는데는 약 두세시간 걸렸던 것 같다. 계산의 경우에도 웨이터를 불러서 테이블에서 하게 되는데, 웨이터가 함흥차사가 된 경우도 꽤 있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함께하는 사람과 음식이야기를 포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한 번 저녁식사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시간을 각오해야 하는 데에다가 일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하지 않는 분위기다 보니 화제의 빈곤을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는 있다. 여기 나폴리의 친구들은 상당히 활달하고 이야기를 하는것을 좋아하다보니 실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 밤이 늦어지는 경우가 꽤 많다. 이렇게 격식을 갖춰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 약 8시 반이나 9시정도의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시작하게 되고 2시간에서 3시간 정도의 식사를 마치게 되면 밤 11시-12시정도 되므로 저녁약속이 있는 경우 마음먹고 움직이는게 맞을 듯 한다. 
 
  음식 문화와 일반적인 외식에 걸리는 시간을 적은 김에 여행자들을 위해 조금 더 첨언해본다면, 스케쥴에 쫓기는 여행을 하면서 현지의 레스토랑(ristorante)이나 뜨라또리아(trattoria, 일반적인 현지 음식점을 의미한다)에서 간단하게 파스타만 하나 먹고 나올 생각하면서 들어가는것은 상당히 비추천이다. 대부분의 식당이 느리게 돌아가는 속도에 익숙하다 보니 (특히 한국인) 여행자들의 급한 사정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음식 주문부터 서빙, 식사후 계산까지 걸리는 시간인 최소한 시간단위로서 이 정도 시간이 확보가 되지 않는다면 길거리 음식이나 피자전문집(pizzeria)등 빠르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는 것이 마땅하다. 어쩔수 없이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일정이 늦어지는것을 감안하거나 혹은 웨이터에게 특별히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요리 및 서빙을 빠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처음부터 하는편이 좋다. 조금은 다른 이유로 여기 나폴리에서 유명한 피자집을 빠르게 먹고 다른곳으로 이동하는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음식으로 유명한 집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그 영업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편으로서 3-4시간의 점심시간 운영 이후에 문을 닫고 다시 저녁늦게 문을 열어서 저녁시간 운영을 하게 된다. 비교적 짧은 운영시간으로 인해 유명한 피자집 앞에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상당히 긴 줄을 서게 되고 이를 기다리는것도 꽤 고역이다. 예를들어 스파카 나폴리의 소르빌로(Sorbillo)의 경우 점심시간이 12시에서 3시 반까지 입장을 받고, 그 이후에는 더이상 입장할 수 없다. 그런데 보통 기다리는 줄이 매우 길어서 대기시간이 한시간을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있다[3]. 결국 여행을 하면서 현지에서 유명한 음식점에서 음식의 즐거움까지 느끼려면 어느경우가 되던 2시간의 여유시간을 잡아놓는 방법을 추천한다.
 
  생각나는대로 자판을 두들겨 가며 현지의 식사 문화에 대해 기록해보았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나폴리를 기준으로 조금은 더 세세한 메뉴의 설명도 해 볼까 한다. 술 역시도 식전에 마시는것, 식사중에 마시는것, 식후에 마시는것이 나뉘는 편이고 음식점 분류도 다양하기에 음식에 대한 기대치도 달라지게 된다. 또한 일반적인 뜨라또리아처럼 보이지만 약식으로 기본 코스요리를 먹게 해주는 그런 음식점도 있고 (장단점이 분명하다. 미리미리 준비되어서 빠르게 서빙되어오는데다가 꽤 먹을만한데 가격은 저렴한게 장점이라면, 역시 제대로 조리된것은 아니라는게 단점. 자세한것은 추후 기술하도록 하겠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특히 밀라노 지역에서) 유래된 happy hour를 이용해 apertivo (식전 음료)와 함께 다양한 부페식 finger food로 ‘식사’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 – 실제로 그러는 사람도 꽤 많다-. 필자 역시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뭐가뭔지 배워나가는 실정에서 얼마나 자세히 기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다음을 기약하며 여기에서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1] 시칠리아식의 특징은 보통 달달한 크림에 럼 향이 많이 나는 편으로서, 이탈리아 북부에서 온 친구는 나폴리 음식이라 부르던데 나폴리 친구는 시칠리아 음식이라 부르던 것을 보면 정말 시칠리아를 가보기 전에 시칠리아 돌체인지 확신은 가지지 못하겠다. 다만 나폴리 후식들을 시칠리아 식을 만든게 아닌가 그런 추측 중에 있다. 
 
[2] Amaro라는 단어는 이리저리 자주 듣게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쓴 맛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많은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할때 nomale(일반적)으로 주문하면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주는데, 이 때 caffe amaro라고 하면 에스프레소 샷 그대로 달라는 의미가 된다. 본문에서의 Amaro는 일종의 대명사로서 시칠리아에서 나온 약초주에 해당되는데 실제 맛은 약초로 담근 술에 설탕을 듬뿍넣은 그런 맛이다. 한번 궁금하면 바에서 주문해서 마셔도 된다.
 

 

[3]  필자는 여기 두번 먹으러 갔다가 두 번 다 그 옆의 다른 피자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었다. 조금 떨어진 또 다른 유명한 피자집인 Da Michele의 경우 첫번째 갔을때는 약 30명의 대기를 했었고 두번 째 갔을때는… 대기번호 5번이었지만 그 시점에 입장하던 사람은 30번대였다 – 즉 필자가 받은 5번은 105번이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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