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가지는 여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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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여가시간”에 대한 나이브한 질문은 한번씩 나의 머리속을 헝클어버리곤 한다. 간단한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대답하기 힘든 이 질문 속에서는, 평균에 대한 환상이 숨어져 있는 것 같다. 정답이 없는 문제의 정답을 찾고자 하는 행동은 의미없는 듯 하면서도, 그 과정속에서 여러가지 재미 선사해 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큰 의미가 없을수도 있는 나의 여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평균적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서 일을 하는가, 혹은 얼마만큼 나의 개인시간을 가지는가, 가족에 대한 기여는 여기에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건가.  여가시간이라는 것은 혹시 나라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해야할 시간을 뺀 나머지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가시간이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예를들어, 나는 연구자이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있는 측면에서는, 일과중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시간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은 직업적 성과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고, 나의 커리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엄밀하게 정리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직업적으로 직접적으로 관련된 활동을 개인의 여유시간이라 이야기하기는 힘들지 않나 싶다. 이러한 선택법적 기반으로 여유시간을 정의하다보면 어느순간 분류의 한계에 막히기 마련이다. 직/간접적으로 어디엔가 영향을 주는 행위들을 모두다 포함할것인지 또는 배제할것인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거법이 뭔가 깔끔한 해결책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이상적으로 생각해보면 여유시간은 내가 가진 전체 시간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시간들을 뺀 나머지가 아닐까 싶지만, 문제는 (지레짐작하기로는) 대부분의 사람의 마이너스가 된다 [a]. 즉, 그 사람이 가질수 있는 여가시간이 마이너스가 되어서는 삶의 질이 엉망이 되기 싶상이다. 어쩌면 여가시간을 꼭 이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여가시간이라는것은, 수동적으로 사람의 적극적 선택을 벗어난 시간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여러가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가시간이라는 것은 약간의 비선택적 시간들이 모이면서, 그 중에서도 선택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조금은 명쾌하지 못한 정의를 내리곤 한다. 이는 나의 직업이나 가족과 관련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지만, 모토 자체는 그런 ‘단단한’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여유를 즐기면서 가족이 함께 즐긴다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할 수 있는것은 분명하다. 다 같이 산책을 즐긴다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행위, 혹은 독서를 하는 행위들은 (습관적 영역이 아닌 이상에야) 시간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이 시간을 만드는 행위는 적극적 의사결정의 요소이다. 이 역시 치열한 머리속 토론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이를 습관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기할 필요가 있다.

휴일을 즐기기 위해 또 다른 생각의 고리에 들어간다는 면을 곰곰히 뜯어보면, 결국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삶의 철학이 성숙해지기 전에는 삶의 질적인 부분이, 그 삶의 흐름에 내맡겨 살아가는 형태가 되기 쉽다. 마찬가지로, 여가생활이 전적으로 공백의 시간으로서, 그 순간 나라는 사람과 혹은 나를 둘러싼 소규모의 사회의 관성 맞춰서 움직이게 되면 전적으로 그에대한 흐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많은 ‘단단한’ 현실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직업적 활동, 가족과 함께하는 행사등) 내면의 생각을 읽어내고, 구체화하며, 현실화를 시키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하고 확장해 나가다보면 단순히 나를 둘러싼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얻기 마련이다. 이러한 개인적 동기와 우연성이 합쳐진 새로운 방향으로의 확산은, 기존의 경험의 대류에 떠밀려 갈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도와 성취감을 주기 마련이다.

길면서, 하나로 완비되지 않은 글을 적으면서, 그래도 마무리를 짓는다면 다음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여가생활을 시간적 경험적 공백에 맞기지 말고 적극적 의사결정으로 결정하자. 최적화 기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선 이내에서 노력으로 극복할수있는 현실적 한계에 파묻히지 말라는 이야기한다.

– 어느 독일의 흔한 겨울날, 공백적 여유를 사유하며

[a] 생각해보면 사람은 공백의 시간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를 채울 방법을 궁리하곤 한다. 단순한 작업등으로 공백의 시간을 활용하는 예시를 의외로 많이 보곤 하는데, 이는 삶 속에서 단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의도적 시간활용과는 조금 다르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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