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들에 대해서 나의 가능성을 테스트 해 본다는것은, 나에게 무한대의 시간이 있고 노력이 가능한 경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은 한정적이고, 그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삶을 살아 나가게 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균형점은 본인의 의지에 의해 제어해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본인의 의지와 세상의 흐름에 따라 고착화된 지점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할 듯 하다.
매우 복잡한 시스템 하에서 어떠한 고정점은 순수한 나만의 동기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행위에 대한 직접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예를든다면, 데드라인이 정해진 일을, 그리고 집중해서 한다면 그 시간내에 충분히 해 낼수 있는 일을, 여러가지 다른 이유때문에 미뤄가면서 늦게 시작하는 것. 절제하지 않고 술을 계속 마시는 것. 혹은 매일과 같이 돌아가면서 많은 술을 마시는 것. 적당한 관계의 친구에게 기분나쁠수 있는 말을 하는 것. 이러한 예시들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단기적 혹은 장기적 결과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외적인 부분에서 작용하는 복잡한 비선형적 구조까지 미리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여, 복잡한 미래에 대한 여파를 짐작할 수 없다면,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근시일적으로 (하지만 장기적인 누적관계로) 생각하여 본인이 나아가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가면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을 어느정도 배제하는것이 이러한 복잡계에서의 본인 의지의 투영을 손쉽게 해 준다.
어떠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할때, 그로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결과가 안좋을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게 좋을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듯이 세상에는 직접 경험이 아니라 간접 경험으로 배우게 되는게 더 좋은 것들 역시 있다. 극단적인 예시로는 중독(addiction)증과 같이, 다른 외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르게 되는 요소들이 있다. 본인이 스스로가 제어되지 않는 것을,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은 삶에서 목적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 것으로, 즐긴다는 것을 스스로 제어되지 못한 것을 하기 위한 자기위안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극단적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의외로 사소한 많은 행동에서 이런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작은 일탈들 역시 그런 요소가 아닐까 싶다. 삶 속에서 이러한 부분에서 발생되는 좋은 미담들이 많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절대 다수의 작은 습관적 일탈들의 일상화가 대부분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것에 대한 반증하는것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내가 바라는 결과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약간의 동기부여와 함께 반복적으로 수행해나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많은 행동들이 나에게 좋다고 항상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건설적인 방향으로 도움을 준다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받은 행위들은, 그 동기와는 별개로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좋은 지표를 만들어주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운동, 양질의 독서, 글쓰기,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토론, 적절한 취미생활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또한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다면, 적당한 술자리 역시 좋은 요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당한’, ‘질적’,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놓고 다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한 일이든 극단적인 경계까지 가는것은 결코 좋지 않다는 생각에 이렇게 적은것 같다. 이 모든것은, 우리가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의지로 그만두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영위해야 할 것이고, 우리의 의지로 그것을 제어하지 못할정도로 좋은 경우에는 오히려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좋은 것에서는 적절히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도 그런 의미에서 마무리를 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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