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일찍 일어난 새벽, 하루의 할일이 많음을 연말인 지금에도 인지하고 있다는게 재미있게 느껴진다. 더 재미있는것은, 이럴 때일수록 일과 관련없는 글쓰기가 재미있어 진다는 것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어 예전에 적어둔 글을 마무리 해 본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방법론은 여전히 잘 살아 남아 있다. 필자 역시도, 직접적인 계산들은 종이와 펜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연구노트들은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한다. 한 번 보관된 파일의 경우에는, Devonthink와 같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보관되면서, 가끔 참조가 필요할때 Item Link등을 이용해서 참조하고, 또 추가 메모도 하거나, 혹은 잘못한 계산등을 마킹해놓거나 하면서 제법 오래 살아있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손으로 작성한 노트는 물리적으로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고, 스캔판 파일의 경우 스캔 앱에 보관되어 있고 (요즈음은 그냥 아이폰으로 Note 앱에서 스캔하는 편이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있다. 이 중에서 오랫동안 두고두고 참조하는것은 결국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형태이지만, 일정부분 성숙된 다음에는 디지털 노트로 변환되므로 이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디지털 노트들을 보고 있다가 세세한 계산이 필요할때 참조할 수 있게 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다.
막상 문헌을 본격적으로 읽을때는 그냥 프린트를 한다. 책도 요즈음은 전자문헌으로 제공되는것이 많아서 (물리적으로 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필요한 챕터등을 프린터 해서 본다. 출력물은 소모품처럼 간편하게 쓸 수 있는게 매우 큰 장점이다. 펜을 손에 든 채 마구잡이로 낙서할 수 있다는 것은 그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생산성 도구이다.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체크포인트, 수식계산, 몇가지 내 생각의 반론, Figure에서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예상방안 다 그려서 가지고 놀다가 중요한 부분들을 정리할 필요있으면 연구노트처럼 스캔해서 보관한다.* 보통은, 그래도 옆에 놓아둔 공책에 정리해둔게 있어서 이것만 스캔하는 편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적 거리를 둔 다음에 버린다. 다음 연구에 있어서 이 논문을 다시 볼 경우, 다시 프린트해서 보는 편이다. 필자는 결코 종이의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론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는 실제로 사고 실험의 한 단계라 보는 편이다. 또한 이러한 출력물의 경우 사소한 노트가 빽빽히 여백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의미없이 버려지는 종이는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책을 읽을때는 아이패드나 노트북과 같은 디바이스보다는, 종이로 된 책이거나 이북리더기를 사용한다. 필자가 사용하는 킨들은 벌써 구입한지 5년이 넘었고, 배터리 성능이 하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현역이다. 사실 왠만하면 화면의 불을 끄고 사용하기에, 이북리더기의 사용시 종이 책을 보는 것 만큼 눈이 편하다. 아이패드나 노트북으로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종일 발광하는 디스플레이로 문헌을 읽고 다시 집에서 취미생활로 읽을때는 상당히 눈이 피로한 편이다. 이럴때 킨들을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 주곤 한다. 오랜 기기를 사용하면서 손때묻은 기분도 좋지만, 거기에 덧붙여 늘 같은 사용성을 제공해주는 기기는 디지털 시대에 뭔가 아날로그적 향수를 주기 마련이다.
2014년에 구입한 2013년형 맥북은 여전히 집에서 좋은 사용성을 자랑하고 있다. 기기의 만듦새가 어떻게 중요한지를 보면, 사용할 수 있는 기대 수명을 바라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 때 연구실에서 사용했던 이후 모델의 맥북보다도, 집에서 사용하는 오래전 맥북은 별 문제없이 아주 오랜시간 사용해 올 수 있었다. 중간에 배터리 하나 수리한 것 외에는 추가 비용의 지출도 없었고, 작년부터인가 스피커 한쪽에 문제가 발생한 것 외에는, 현역으로 사용하는데 문제없다. 이는,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기본적인 프로세서의 발전이 단순한 성능보다는 전성비 위주로 방향이 바뀌었기에 실제로 성능 자체는 아직도 쓸만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쓰는 연구용 맥북 (2019년형 CTO모델)에 비하면 낮은 성능이지만, 개인 노트북으로 복잡한 계산같은거 돌릴 것도 아니므로 일반적인 사용으로는 충분한다.
필자는 Day One이라는 다이어리 앱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기 시작했을때가 2012년 겨울이라 나오니, 약 10여년간 약 3500개가 되는 짧고 긴 (취미에 해당되는) 글들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이 글 역시도 그걸로 만들어지고, 나중에 워드프레스에서 손을 좀 본 다음에 업로드한다. 그렇다고, 수정한 파일을 데이원으로 다시 복사해오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여기(Day One)에 기록된 글이 조금 날것으로 있지만, 업무적인 글도 아닌데 나쁠게 뭔가 싶은게 필자의 생각이다. 본격적인 연구 성과물의 경우에는 여전히 Emacs와 LaTex 조합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의 연구실에는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LaTex와 그 사람이 오래 써 온 에디터를 활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물론 협업을 위해 Word파일들이 공유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결국 대안이 없을 때이고, 실제로 작업을 시작한다면 LaTex가 우선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 Emacs를 사용한지는 한 15년쯤 되어서 (그게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늘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큰 문제없이 사용하곤 한다. 그러다가 문제생기면 구글에 찾아보는데, 대부분의 답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 말이 필자가 사용하는 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각종 도구는 필자가 사용하기 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것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예로든다면, 문헌 관리 소프트웨어의 변경이나, 세 종류의 PDF 뷰어를 사용한다거나, 혹은 각종 편의성 환경의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하다못해 사용하던 필기구도 연필에서 만년필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워크플로우에 도입하는 도구의 선택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오래 지속적으로 신뢰성있게 쓸 수 있는지가 그 관건이다. 아날로그적 도구의 경우에는, 결국 그 브랜드가 오랫동안 많이 사용되어지는지 혹은 그 기능이 나의 요구를 만족하는지가 관계있다. 물리적으로 복잡해지고 기능이 다양해질수록, 도구의 사용성은 도입해보기 전에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필자의 생각으로는) 디지털 도구에 와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 기능이 매우 복잡하고 추상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실질적으로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 사용성을 머리속으로 그려보기 힘든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신뢰성있게 해당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는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이 모든것들을 태블릿등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종이로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리고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찢어버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일하는 도중 다른곳에 집중력을 뺏기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장점이다. 연구노트가 일원화 되어서 잘 관리안되면 뭐 어떠랴. 결국 일정시간이 지난다음에 묶이는 중간 결과들은 디지털화 시키기에 초기 단계의 자료들은 관리가 핵심은 아니라 생각한다.
** 이는 오래 계산할때 연필은 힘을 많이 주어서 손목이 아파서 결국 힘을 약하게 주는 만년필로 바꾼 것이다. 10유로대 적당한 것으로 산 다음 오랜기간동안 잘 사용하고 있다. 리필용 카트리지 사서 그 처음껄 아직도 고장없이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모두 튼튼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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